KIA 타이거즈/2009년
'2000년대 우승은 냄새도 못맡고 끝장나는구나'라고 모두가 포기했던 2009 시즌. 하지만 4월 경 LG 트윈스와의 트레이드로 강철민을 보내고 김상현과 박기남을 데려왔는데, 이 트레이드가 제대로 대박을 쳤다. 만년 유망주 타이틀만 달고 다닌 김상현이 2009 시즌에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이다. [1]
1루는 건강한 최희섭이 2008시즌의 부진을 딛고 한 시즌 내내 공수에서 고루 활약을 하였다. 2루수 김종국은 명성에 맞지 않은 한 두 번의 실책으로 인해 안치홍에게 2루수를 내주고 백업으로 내려갔다. 안치홍은 시즌초 3루에서도 잠깐 좋은 수비를 보여줬으며 특히 시즌초 안타를 잘 생산해내며 눈도장을 받았고 김종국처럼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뛰어난 장타력을 보여주며 왜 자신이 미래를 위해 밀어줘야하는 2차 1번선수인지를 보여주었다. 이적해 온 김상현이 3루를 맡게 되자 내야 어디서든 수비를 잘하는 3루 이현곤이 유격수로 가고, 유격수 김선빈은 백업으로서 역할을 하게되었다. 게다가 김상현과 함께온 박기남이 3루와 2루 백업을 잘해주었다. 홍세완은 최희섭 다음으로 1루를 맡았는데 수비이닝은 적었고 주로 대타나 지명타자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내야는 신인과 이적 선수들이 자리를 잡아가며 세대교체가 되는 동시에 선수층이 두터워지는 효과를 보았다.
외야는 시즌 초반 이용규의 장기 부상으로 큰 공백이 생겼는데 중견수에서 김원섭이 자기 역할을 하면서 전력손실을 최소화 하였다. 우익수 이종범은 외야수비를 가장 많이 책임져주면서 타격 또한 최근 몇 년간의 극심한 부진에서 벗아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2년차 대졸 나지완은 수비 능력은 떨어지지만 이용규가 부상당하고 체력 문제로 이종범 김원섭을 휴식 없이 기용하기 힘든데다가 1루와 좌익수를 맡고 있는 장성호도 역시 외야 수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좌/우익수 수비에 투입되었다. 최경환이 백업으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투수진에서 윤석민, 양현종, 서재응, 로페즈, 구톰슨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선동열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강한 투수들로 제압하는 팀컬러가 부활했다. 특히 17시즌까지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고질적인 불펜난은 한기주가 부상이탈하고도 마무리 유동훈이 역대급의 플루크 시즌을 보내며 뒷문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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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1등공신 로페즈는 이닝 1위, 다승 공동 1위, 평균자책점 3위, QS 2위에 오르며 맹활약을 해주었다. 구톰슨도 평균자책점 6위, 다승 4위, 이닝 9위를 기록하며 로페즈와 함께 외인 원투펀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현종도 평균자책점 5위를 기록하며 미래의 토종 에이스임을 증명하였다. 안타까운건 윤석민인데 시즌 초반 한기주의 몸상태가 나빠지면서 결국 팀을 위해 선발 대신 마무리 역할을 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규정이닝도 못채우고 9승을 거두며 10승에도 실패, 향후 저평가 되는 이유가 늘어나 버렸다. 곽정철은 롱 릴리프 역할을 해주면서 100이닝에 가까운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손영민도 자주 나오면서 곽정철만큼 이닝을 책임지며 팀내 최다 홀드를 기록한다. 이대진은 통산 100승을 채우며 선발자리에서 내려오는데 서재응과 함께 "로-구-양-윤-서-이" 전반기 6선발 중 하나의 역할을 해주었다. 유동훈이 있기에 윤석민이 선발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유동훈은 타고투저 시즌인데도 그야말로 언터쳐블. 시즌 6실점 밖에 없는데 전반기는 4자책점이고 아예 후반기에는 0자책점이다. 결과만 보면 선동열 오승환보다도 잘 던졌다. 기다린다고 볼넷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안치면 삼진, 치면 대부분 평범한 내야땅볼이 나왔다.
막강한 투수진을 기반으로 7월까지만 해도 3위에서 심장박동이 멈춰있다가 슬슬 발동이 걸린 타이거즈는 8월부터 엄청난 기세로1위 자리에 올라간 후, 시즌 종료까지 1위 자리를 사수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8월에는 월간 최다승 20을 쓸어담으며 미친 경기력을 선보였다. 8월 마지막 두산과의 주말 3연전이 화룡점정 이었는데 두산이 어떻게든 기아를 막기 위해 계속 추격했으나 중요한 순간마다 최희섭, 김상현, 장성호 등에게 홈런을 맞으며 싹쓸이를 당했다.그럴때마다 망연자실한 두산 팬들의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백미. 한명재 캐스터는 이를 두고 말릴 수 없는 기아타이거즈라고 했으며 허구연은 기아는..무섭네요 라며 감탄했다. 유튜브에 나오는 유명한 캐스터 졸도 영상이 이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경기내내 팽팽하던 양상이 경기 막판 장성호 김원섭의 백투백홈런으로 확 기울어지게 되는 장면. [2]
- 2009년 9월 24일 군산에서 있었던 히어로즈 vs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한명재 캐스터의 경기종료 멘트. 참고로 이 멘트는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당시 캐스터의 멘트를 따온 것이다.'''지난 12년동안 듣고 싶었던 얘기를 제가 지금 해드리겠습니다. 2009년 정규리그 우승은 KIA 타이거즈 입니다!'''
팀타율 최하위[3] 를 기록했지만 눈야구로 출루율 5위를 차지했다. 김상현 최희섭이 30홈런을 넘기며 각각 리그 홈런 1,2위를 차지했고, 2년차 루키 나지완이 20홈런을 넘겼고, 신인 안치홍과 포수 김상훈도 10+홈런을 때려 팀 장타율 4위로 중위권 기록을 채워 팀 성적에 공헌을 하였다. 중위권 타선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것은 우수한 투수들의 공이 컸는데 팀 평균자책점 2위, 최저 사사구, 최저 피홈런을 기록했고, QS와 WHIP도 1위였다. 2009년 10월 24일, SK 와이번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나지완의 9회말 1아웃 끝내기 솔로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한국시리즈 참조.[4]
11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있었던 한일 챔피언십에서는 9:4로 참패했다. 한일 챔피언십에 나간 KIA는 윤석민, 구톰슨, 로페즈, 이용규, 김상훈, 장성호 등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결장했는데 상대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시즌중에도 유지가 거의 안된 올스타 베스트멤버로 나온 것이다. 우쓰미 테츠야 등 한가닥하는 투수들이 죄다 불펜에 대기하고 있었다.
선발로 나선 양현종은 호투했지만 불펜진의 난조[5] 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만, 요미우리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은 양현종, 3타점을 쓸어담은 나지완, 안타도 치고 깔끔한 수비도 보여준 안치홍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엘롯기이탈을 예고하는 흐름으로 여겨지는가 했다. '''하지만'''...
이때 활약한 선수들중 상당수, 특히 김상현, 최희섭, 유동훈, 아킬리노 로페즈등이 2010년 이후로는 변변치않은 활약을 보여줌으로써 플루크 시즌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 로페즈의 경우 승운이 더럽게 안좋았지만, 나머지인 김상현, 최희섭, 유동훈은 2013년까지 현재까지 플루크 소리 들어도 할말 없는 성적을 찍고있다. [6]
어쨌든 KIA 타이거즈는 12년만에 우승을 이뤄냈고, 이 성적을 바탕으로 그간 야구단에 무관심했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비롯한 구단 상층부에게 적극 지원과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와 기아 챌린저스 필드를 얻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KIA 타이거즈의 2009년의 활약과 우승은 한국프로야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로 27승을 합작한 선발 외인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릭 구톰슨의 활약으로 우승을 하자 각 구단에서도 선발 외인 투수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외국인 선수 슬롯 두 개를 전부 선발투수로 돌린 것. 덕분에 타 팀에서도 더스틴 니퍼트나 벤자민 주키치, 레다메스 리즈, 릭 밴덴헐크 등 유능한 외국인 선발을 보유하게 되면서 각 팀의 투수력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로 인해 2011년 코리 알드리지, 카림 가르시아를 끝으로 2년간 외국인 타자를 볼 수 없게 되어 외국인 선수 구성이 단순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문제는 2014년에 외국인 보유인원을 3명으로 증가함과 동시에 포지션이 겹쳐서는 안 되는 규정을 넣으면서 풀리게 되었다.
사실 이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찾으라면 '''선발'''과 '''장타력''' 기반의 야구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공표한 시즌이었다는 것이며, 그동안 강력하게 득세했던 선동렬-김성근-김경문으로 이어지는 불펜 이어던지기와 기동력 야구에 대한 일침이었다는 것이다. 핵심전력이 플루크였다는 것이 독이었지만 이 시기 기아는 짜임새가 약하고 단점이 요소요소에 드러난 팀이었음에도 구위를 바탕으로 찍어누르는 투수진과 장타력이 득시글대는 타선을 바탕으로 우승을 했고, 야구에서 '''힘'''의 중요성을 증명해냈다. 다만 2010년 이후 전력유지에 실패했고 진정한 힘의 야구의 전성기는 류중일의 삼성 라이온즈가 열어젖힌다.
[1] 김상현은 이 때부터 등번호 27번을 달았다. 김봉연- 으로 이어지는 강타자 계보를 이어받게 된 것. 원래 타이거즈 소속이었다가 다시 타이거즈로 왔기에, 그의 홈런쇼는 가무잡잡한 피부와 맞물려 '돌아온 김상사'라는 별명이 생겼다. 복귀 직후의 응원가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이기도 해서 더더욱 그랬다.[2] 승률제로 한다면 KIA가 승차 없이 2위여야 하지만 이 해에는 무승부가 패로 처리되는 시즌이었기 때문에 KIA가 81승, SK가 80승으로 각각 1,2위를 차지하였다.[3] 2009년 팀타율 0.267로 8위[4] 잠실을 홈으로 쓰고 있었는데도, 초반부터 5점이나 내주며 끌려다녀 '한국시리즈 우승 징크스'가 끝날 뻔했던 것을 적시타와 홈런을 앞세워 5:6으로 뒤집었다.[5] 좌타자가 많은 요미우리를 상대로 언더인 손영민은 무리가 있었고, 곽정철은 경기 전날 장염으로 폭풍설사에 시달리는 바람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6] 하지만 김상현은 이에대해 좀 억울할수도 있다. 일단 부상으로 100경기도 채 뛰지 못했으면서 21홈런이라는 후덜덜한 장타력을 과시했다. 또한 나지완은 최희섭, 김상현이라는 엄청난 핵우산 아래에서 나비효과와 더불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신인 타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점이 간파당했다. 한마디로 최희섭의 몰락이 타선의 몰락으로 이어졌던 것. 또한 로페즈와 같이할 원투펀치가 없었고, 곽정철은 부상으로 떠났다. 어찌보면 참 운이 없었던 10년도 일지도...